- 함석헌의 생애는 한국적 근대의 모순을 바로잡고 더 나은 세상을 실현하는데 헌신한 양심적 행동가의 삶이면서 종교적 보편주의, 다원주의를 바탕
와단2012. 11. 20. 13:34
- 함석헌의 생애는 한국적 근대의 모순을 바로잡고 더 나은 세상을 실현하는데 헌신한 양심적 행동가의 삶이면서 종교적 보편주의, 다원주의를 바탕으로 동시대에 바람직한 사상적 좌표를 찾아 나선 구도자의 생애였다.
- 자유하지 못하는 사람이 복종할 수 없다. 자유를 알기 전에 한 복종은 짐승의 길듦이지 인격의 순종이 아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하지만 그것은 자유인만이 할 수 있다. 노예가, 자아를 가지지 못한 물건이 어떻게 누구를 사랑하고 도덕률을 가질 수 있겠는가? 우리 국민은 벙어리다. 입이 없다. 인간인 이상 입이 없을 수 없지만, 유구무언, 입이 있고도 한마디 말을 못하는구나! (1923년 일제시대 청년 함석헌)
- 나는 번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를 가지고 정말 우리 민족을 건질 수 있느냐고. ..나라를 해방시키려면 혁명밖에는 길이 없고 혁명을 한다면 사회주의 혁명 이외에 길이 없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민족주의 진영이 썩어져 가는 것을 보면 혁명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 신앙을 버리고 도덕이니 인도주의니 하는 것은 전혀 무시해 버리는 사회주의에 들어갈 수는 차마 없었습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습니다. .. 나는 오래 고민했습니다. (1924~1928 동경고등사범학교 시절)
- 10여 년의 오산학교 교사 생활(1928~1938), 이것이 함석헌의 생애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세속적 의미의 정규 직장 생활이었다. 그후 생애의 마지막까지 함석헌은 다시는 정규적인 직장을 가질 수 없었고 고정적인 수입도 얻을 수 없었다.
- 의사를 배우려다 그만두고, 미술을 뜻하다가 말고, 교육을 하려다가 교육자가 못 되고, 농사를 하려다가 농부가 못 되고, 역사를 연구했으면 하다가 역사책을 내던지고, 성경을 연구하자 하면서 성경을 들고만 있으면서, 집에서 아비 노릇을 못 하고, 나가선 국민 노릇을 못 하고, 학자도 못 되고, 기술자도 못 되고, 사상가도 못 되고, 어부라면서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사람....
- 나는 역사적인 존재였던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정신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영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역사의 예수 안에도 있었고 나 자신 속에도 살아 있습니다.
- 나는 聖俗을 관계 없이 모든 제도에 대항한다.
- 함석헌은 절대자와의 관계를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한 간접적이고 대리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않았고, 오히려 직접적이고 독자적인, 개인적인 관계로 파악했다.
- 예수가 바리새적인 길(율법적인 길)로 구원이 될 수 없는 것을 알았던 것같이 노자, 장자도 유교의 가르침으로 춘추전국시대가 건져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함석헌의 노장 평가)
<산>
나는 그대를 나무랐소이다 물어도 대답도 않는다 나무랐소이다 그대겐 묵묵히 서 있음이 도리어 대답인 걸 나는 모르고 나무랐소이다
나는 그대를 비웃었소이다 끄들어도 꼼짝도 못한다 비웃었소이다 그대겐 죽은 듯이 앉았음이 도리어 표정인 걸 나는 모르고 비웃었소이다
나는 그대를 의심했소이다 무릎에 올라가도 안아도 안 준다 의심했소이다 그대겐 내버려 둠이 도리어 감춰 줌인 걸 나는 모르고 의심했소이다
크신 그대 높으신 그대 무거운 그대 은근한 그대
나를 그대처럼 만드소서! 그대와 마주앉게 하소서! 그대 속에 눕게 하소서!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윟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라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대선언>
내 기독교에 이단자가 되리라, 참에야 어디 딴 끝 있으리오. 그것은 교회주의의 안경에 비치는 허깨비뿐이니라. ..... 기독교는 위대하다. 그러나 참은 보다 더 위대하다. 참을 위해 교회에 죽으리라. 교회당 탑 밑에 내 뼈다귀는 혹 있으리라. 그러나 내 영은 결단코 거기 갇힐 수 없느니라. (1953)
- 그는 열린 마음으로 기독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도 받아들였다. 그는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노자, 공자, 불경도 보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했다. 함석헌이 말하는 종교는 제도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삶으로 체현되는 종교였다.
- 나는 십자가를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십자가는 멀리서 단순히 우러러 보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기도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남 앞에서 공식적으로 하는 기도는 텅 빈 형식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 앞에서 보란 듯이 하는 기도는 가능한 피하자는 말이다. .. 나는 소위 동양적인 것을 거부하는 교회와 대항해 싸울 각오가 돼 있다. 유교와 불교에 대한 거의 모든 반대는, 그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보다는 얕은 교단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1957년 3,5,6,7월호 함석헌과 신부 윤형중의 종교관 논쟁)
- 퀘이커들은 인간사의 모든 일에는 성속에 관계없이 절대자의 숨결이 서려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퀘이커리즘을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는 전체성이다. 모든 것은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어떤 것도 전체라는 영역에서 따로 존재할 수 없다.그래서 퀘이커들에겐 성속의 구별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인다." 그래서 사회 문제는 종교 문제와 동등하게 중요하다.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 때문에 퀘이커들이 기도, 묵상, 혹은 절대자에 예배할 때, 장황한 말이나 예식보다는 좀 더 침묵에 중점을 둔다. 퀘이커가, 비록 역사적으로는 기독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인간 본성에 대해 '성악설'이나 '원죄론'보다는 '성선설'이나 '낙관론'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기독교의 시각과 다른 면이다.
- 자기 종교를 절대화하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종교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는 내 속에 있는 종교적인 것이 참 종교입니다. 그것이 나타나서 교리도 되고 교회도 되는 것인 만큼 그에 집착해서는 안되는데, 사람들은 대개 집착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제도화된 것을 종교로 알고 절대화하려는 논리를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 성한 배에 모든 음식은 다 먹을거다. 성한 마음에 모든 사람은 다 사람이다. 성한 혼에 모든 종교는 다 하나님 말씀이다.
- 한 종교의 절대를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다. 한 종교에 이르는 것은 모든 종교로서만 될 일이다.
- 아무리 위대한 종교라도 거기 하느님을 가두어 둘 만큼 클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에게 나가는 길이 무한히 있을 것입니다. 무한을 어떤 길로만 간다는 그런 모순이 어디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