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반헌법열전과 텔레그램

와단 2019. 1. 15. 16:54

지난 2015년 10월 2일 나는 한홍구 선생님에게 이런 메일을 보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영국 김성수입니다.
반헌법열전 관련하여 저와 오마이뉴스 인터뷰 가능 하실는지요?“

그리고 다음날인 2015년 10월 3일 나는 한홍구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답장을 받았다.

“반헌법 일 좀 같이 하려고 연락드렸더니 영국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예비 필자 300명 정도 모집 중인데 김 박사도 필진으로 참여해 주세요.”


그래서 한홍구 선생님과 하려던 인터뷰는 못하고 오히려 반헌법 일에 거꾸로 엮이게 되었다. 한‘선수’에게 김성수가 당한 셈이다.

그러나 막상 일을 시작하자니 평소 스마트폰을 안 쓰는 나는 또 엄청난 ‘기술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나와 처 그리고 10대 후반의 우리 아이들은 전혀 스마트폰을 안 쓴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 정말 “모르는 게 약”(영국 속담으로는 “무지가 축복”)인 경험을 많이 한다.


이런 나와 우리 가족을 보고 영국의 한 친구는 어느 날 내게 이렇게 물었다. “퀘이커교도들은 교리 때문에 스마트폰을 쓰면 안되니?” 사실 퀘이커들은 형식을 최소화하고 그래서 그런지 교리가 아예 없다. 그래서 이런 황당한 질문을 받고 좀 당황해 하기도 했다.


하여간 반헌법 일을 하자니 ‘텔레그램’을 사용해야 한다는 연락을 어느 날 전명혁 선생님으로 부터 받았다. 텔레그램을 사용할 줄 모르는 나는 나와 같은 ‘콤맹’ 수준인 영국인 아내에게 이 말을 전했다. 그러자 아내가 이렇게 물었다. “아니 영국에서는 ‘전보’(電報, 텔레그램)를 19세기부터 사용해서 지금은 더 이상 사용 안하는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전보를 사용하나요?”


전명혁 선생님과 몇 번의 연락이 오간 후 나는 희미하게나마 텔레그램이 ‘전보’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인지 짐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없으면 나는 텔레그램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런 차별이 있나!


결국 보다 못한 한홍구 선생님이 한국에서 나를 위해 스마트폰을 사서 영국으로 보내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도 알량한 자손심이 있어서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해서 마지못해 텔레그램 사용용으로 아내가 임시 정액제 가족용 스마트폰을 샀다.(그러나 이 스마트폰은 지금도 쓰지 않고 그냥 장롱속에 처박혀있다). 하여간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텔레그램을 개통했다. 그리고 요즘 텔레그램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역사학 전공자인 나는 반헌법 일을 하면서 한국현대사의 어두운 면에 대해 좀 더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런 배움의 즐거움이 너무 좋다. 나의 30대에 나는 학, 석, 박사 논문을 모두 함석헌(1901-1989)에 대해 쓰면서 그분의 그 훌륭한 삶과 정신을 본받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반헌법열전에 나오는 ‘친구’들은 한 결 같이 내가 싫어하는 ‘비호감’들이다. 그러나 그 ‘친구’들의 삶에 대해 공부하면서도 ‘타산지석’으로 배우고 깨닫는 바가 크다. 그래서 나는 이일을 좋아한다. 다만 내가 1주 37.5시간은 영국 시골동네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 1주일에 8시간 정도 밖에는 이일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면 아쉽다.


그럼에도 반헌법일을 통해서 내 모국의 지인들과 끊임없이 생각과 의견을 나누고 자료를 조사하고 글을 써서 또 세상에 공유하는 것에 많은 보람과 즐거움을 느낀다.

이국에서 나마 이런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나를 엮이게 해준 한‘선수’님에게 마음으로부터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