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e라이프-眞e Life] 진이, 김성수씨 만나다

와단 2008. 6. 8. 19:55
 

[e라이프-眞e Life] 진이, 김성수씨 만나다

디지털타임즈 2002-12-10
 
평범한 철도기관서서 역사학자.홍보맨 변신 "함석헌선생 접하고 '인생역전' 됐죠"

`여섯 자리만 맞추면, 인생 역전'

요즘 온라인 연합복권인 로또 광고 카피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날씨는 서릿발을 뿌리며 추워지고 속절없이 한 해가 가는데, 올해도 이루어 놓은 일은 없고 마음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러다가 광고 카피를 보니 `나도 한번'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하더군요. 저도 한번 인생 역전 스토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어느 날 가슴에 와 닿는 진정한 인생 역전 스토리를 만났습니다. 여섯 자리 숫자가 아닌 `함�석�헌'의 세 글자로 인해 인생이 달라진 김성수씨(42)가 바로 진이(眞e)가 만난 인생 역전의 주인공입니다.

김씨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너무나 다른 영역들을 넘나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는 철도기관사에서 역사학자로, 그리고 홍보대행사 부장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 자신만의 행복한 인생을 꾸려나가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영국 유학시절 만난 영국여인 앤(41)과 결혼해 아들 현(4�영국이름 조나단)군과 영(2�로즈)양을 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합니다.

다소 평범해 보이고 법 없이도 살 것 같이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그에게 그런 인생역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적잖이 놀랐지요. `와단'이라는 별명이 그의 인상을 좀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겠군요. 이 별명은 `밥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의 저자 최일도 목사가 지어준 것이라고 합니다. 와이셔츠 단추구멍만큼 눈이 작다고 해서 붙여진 애칭이라는군요.

자, 그러면 재미있는 이력을 가지고 있는 그의 인생 이야기 보따리를 술술 풀어볼까요.

◈ `골통 보수 예수주의자' 그리고 9년 간의 철도 공무원

김성수씨를 이야기할 때 출발점은 한국철도대학입니다. 그는 신진고등학교 자동차학과를 나온 뒤 1979년 한국철도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신 속에 무한한 열정을 감춘 채 평범한 철도기관사로 9년 간 일을 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교회에 다녔던 그는 철야와 금식기도를 일삼아 할 정도로 교회와 함께 하는 생활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붙은 별명 아닌 별명이 `골통 보수 예수쟁이'였답니다.

그러던 김씨의 인생 궤도가 바뀐 것은 교회에서 열린 김동길 박사의 강연 때문입니다. 김 박사의 강연에 충격을 받은 그는 `젊은 사람이 교회에 미쳐서 살면 안됩니다. 함석헌 선생님처럼 사회문제에도 눈을 돌려보세요'라는 김 교수의 조언을 듣고 `함석헌'이라는 생소한 이름 석자를 처음 접하게 됩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함석헌의 공개강의를 듣게 된 것이 그를 함석헌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든 계기였다지요. 기독교 근본주의에 빠져있던 그에게 함석헌의 종교적 관용주의는 온 몸에 전율을 느낄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김성수씨는 그 이후 함석헌의 저서를 모두 읽는 것은 물론이고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함석헌옹의 강의를 듣는 `함석헌 마니아'가 되었지요. 그러다가 1989년 2월4일 새벽 5시40분 함석헌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김씨는 함석헌 선생의 작고 소식에 9년 동안 일했던 철도청에 사직서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혈혈단신 영국 유학길을 떠납니다. 함석헌 선생의 삶과 사상을 본격적으로 연구해 보자는 끓어오르는 열정을 억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 김씨는 위대한 사상가이면서 실천가인 현대사의 거인 함석헌 선생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게 되지요.

◈ `함�석�헌'에 바친 유학생활 10년

김성수씨가 영국을 유학지로 정한 이유는 그곳이 퀘이커의 본산지이기 때문입니다. 함석헌 선생은 퀘이커 신자였지요. 함 선생의 다원적 종교관과 종교적 관용은 퀘이커교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있지요.

그가 수학한 곳은 영국의 에섹스대학 역사학과입니다. 그 곳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1998년에는 셰필드대학 동아시아학과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았습니다. 그렇게 `함석헌'에 대한 탐구는 10년 이상 이어집니다. 석사와 박사 논문의 주제가 `함석헌'이었으니까요. 김씨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함석헌의 생애와 사상-20세기 한국의 씨알의 소리, 그리고 종교적 다원주의의 선구자'였습니다.

함석헌에 푹 빠진 그는 한국에 돌아와 `함석헌 평전'을 내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함석헌 선생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출간된 그의 책은 한동안 묻혀져 있던 함석헌 선생을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다시 일깨워주는 적지 않은 역할을 했지요. 책이 출판된 후 한동안 교보문고 인문사회서적 분야 베스트셀러 10위권의 자리를 지키는 등 인기가 높았습니다.

◈ 세계에 알려진 `함석헌 평전'

함석헌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그의 꿈은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국내에서 입소문을 타고 독자들을 넓혔던 `함석헌 평전'과는 별개로 지난 4월에는 영어판 함석헌 평전(Biography of a Korean Quaker, Ham Sok Hon)이 출판됐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영국인 평론가들이 김씨가 쓴 평전에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이며 서평을 냈지요.

김성수씨의 `함석헌 평전' 외에도 한길사가 20권으로 펴낸 `함석헌 전집'을 비롯, 함석헌 선생의 사상과 삶을 담은 책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김씨가 10년의 세월을 투자해 쓴 책은 기존의 책들과 다르지요. 김씨는 `한국의 간디'로 알려져 있는 함석헌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따듯한 인간의 시선으로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함 선생에 대한 비판도 곳곳에 담았습니다. 함석헌 선생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애정이 책 곳곳에 배어 있는 것이지요. 독자들이 아직도 끊임없이 `함석헌 평전'을 찾는 이유도 작가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 현재의 그는 `홍보맨'

김성수씨는 올해 또 다른 인생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바로 `기업홍보' 일입니다. 철도기관사에서 역사학자로 변신한 그가 이번에는 홍보마케팅 분야에 도전한 것입니다.

그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브라이먼 커뮤니케이션스'(www.briman.co.kr)라는 홍보 대행사입니다. 김씨는 이 회사 박재수 사장과의 우연한 만남 덕에 어느 날 갑자기 홍보일에 뛰어든 것이지요. 회사에서 김씨의 직책은 부장(General Manager)입니다.

김씨는 박 사장을 1981년 당시 연세대 김동길 교수의 서양사 강의를 듣다가 처음 만났답니다. 당시 박 사장은 연세대 금속공학과 학생으로 서양사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이때 철도기관사 신분으로 이 강의를 `도강'하던 김씨와 마주친 것이지요. 그리고 올 봄 김씨는 우연히 길에서 박 사장을 만났고, 박 사장의 제의를 받아 홍보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입니다.

홍보마케팅과 함석헌 연구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김씨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겠지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저는 함석헌 선생의 위대함을 국내는 물론 세계에 홍보하고 싶습니다"고 말했습니다. 홍보일을 하게 됐다고 함석헌 선생에 대한 그의 집요한 탐구가 멈추는 것은 아니겠지요.

김씨는 "앞으로도 한 사람의 인물을 통해 시대를 조망하는 연구를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탐구대상으로 마음에 두고 있는 인물로 `박헌영' `김구' `조봉암'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퀘이커회에서 준비하고 있는 한반도 통일모임에도 참여해 통일 운동에도 앞장설 계획이라고 합니다.

철도기관사에서 역사학자로, 그리고 홍보마케터로 변신을 거듭한 김씨는 삶의 겉모습이 바뀌었을지언정 삶의 열정만큼은 결코 변치 않는 평화주의자인 것 같습니다. 주로 외국 IT업체의 국내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김씨의 활약을 기대해봅니다.

진이/기획취재팀

▲ 함석헌(1901-1989) 선생은 누구 : 독립운동과 민주화, 인권운동에 공헌하고 `씨알'사상을 정립한 인물. 함석헌 선생은 개신교가 한국에 전래된 이후 주체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소화해 동양의 고전과 조화시키면서 독창적인 기독교 사상을 이룩한 종교사상가이자 역사를 가르친 교육자였다.

평북 용천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함석헌은 3�1만세 사건에 참여한 뒤 평안도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남강 이승훈과 다석 유영모로부터 민족과 역사를 배웠고, 자유당 정권과 군사독재 치하에서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하며 재야의 중심인물로 활동했다.

진이 (jinee@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