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그는 결국 실패했지만…

와단 2008. 6. 20. 17:51

인터넷 한겨레
문화/생활

  • 영화/비디오
  • 만화/애니
  • 여행/여가
  • 문학/출판
  • 방송/연예
  • 대중음악
  • 언론/미디어
  • 생활/건강
  • 음악미술연극
  • 전시/공연
  • 종교

  • 전체기사
    주요기사
    지난기사

    기사검색

    기획연재
  • 인문학데이트
  • 책의 발견
  • 책을 만드는
    ....
    사람들
  • 책과 사람
  • 풍향계
  • 글마을통신
  • 화제의 책


  • 편집자에게
  • 광고안내
  • 서비스지도
  • 신문구독신청

  • 편집시각 2001년03월11일21시01분 KST
    한겨레/문화생활/문학출판

    [출판] 그는 결국 실패했지만…


    사상가 함석헌(1901~1989)의 일생은 격동으로 얼룩진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십자가처럼 떠메고 다닌 삶이었다. `한국의 간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등의 헌사들과 철학, 신학, 재야운동가, 역사가, 언론인 등을 섭렵한 다양한 이력부터가 그렇다. 세상의 변화에 온전히 내어맡긴 그의 삶은 씨ㅇㆍㄹ사상에서 말하는 민중(씨ㅇㆍㄹ)의 창조적 가능성을 인간씨앗이 되어 실천한 과정이기도 했다.

    철도공무원을 하다 함석헌 사상에 심취해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 김성수씨는 `항상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는 말로 함석헌의 복잡다단한 삶과 사상을 요약한다. 그의 박사학위논문을 정리한 <함석헌 평전>(도서출판 삼인)은 후인들에게 `들사람얼'(야인정신)을 부르짖으며 미완의 삶을 고집했던 함석헌의 일대기를 최초로 분석·평가한 책이다.

    `신의 도시와 세속도시 사이에서의 여든 아홉해'란 부제처럼 그의 삶은 하느님 나라와 인간세상의 이원론, 이념대립의 뿌리가 깊은 한반도 현실과 대결하며 평화와 관용의 공동체를 역사속의 삶과 하나로 묶는데 바쳐진 것이었다. 평북 용천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평양고보학생일 때 체험한 3·1시위와 이후 오산학교로 이어진 학창시절, 그리고 일본 도쿄에서 무교회주의에 공명하는 과정 등에 대한 초기서술은 민족에 대한 고민이 신학에서 비롯된 사상적 변화를 이해하는 단서임을 보여준다. 3·1운동 뒤 친일로 기운 교단의 모습에 실망하고, 사회주의 무신론과 기독교 사이에서 갈등했던 그는 성서본질을 강조하는 무교회주의를 대안으로 택한다. 그것은 유불사상 탐구와 결합되면서 정치권력·제도가 줄곧 민중(씨알)을 괴롭혔던 이후 80년대까지의 정치·사회상에 대한 응전론의 신념을 굳히는 토대가 됐다. 청년기 톨스토이, 러스킨의 평화주의, 웰즈의 세계주의론 따위의 영향으로 양심과 도덕을 지고의 인간적 가치로 보았던 그는 결국 실패했지만 영향력있는 이상주의자로 평가되고 있다. 말년의 노태우정권 밀착의혹, 여성편력 등의 민감한 부분까지 사상적 궤적과 연계시켜 분석한 지은이는 이기적이고 소심했던 그의 가정생활과 불행한 가족사 등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A HREF="http://ad.hani.co.kr/RealMedia/ads/click_lx.ads/%%PAGE%%/%%RAND%%/%%POS%%/%%CAMP%%/%%IMAGE%%/%%USER%%">


    [Home| 사설칼럼|기획연재|정치|경제|사회|스포츠|국제|증권|문화생활|정보통신|만화|전체기사] [↑]
    copyright(c)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