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함석헌 관련 책과 함께 만난 사람들

와단 2008. 7. 10. 12:46
함석헌 관련 책과 함께 만난 사람들
소장학자 김성수, 뉴스엔조이
입력 : 2001년 03월 10일 (토) 00:00:00 / 최종편집 : 2001년 03월 10일 (토) 00:00:00 [조회수 : 94] 김종희
40대 초반의 소장학자 김성수씨는 함석헌에 미친 사람이다. 김성수씨는 98년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을 직접 번역해 올해 3월 10일 <함석헌 평전>(삼인)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함석헌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경우는 세계 최초. 김씨는 함석헌을 주제로 영국 에섹스 대학에서 학사·석사학위를, 셰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제목은 '함석헌의 생애와 사상 - 20세기 한국의 씨알의 소리, 그리고 종교적 다원주의의 선구자'이다.

<함석헌 평전>은 크게 세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함석헌이 살면서 고민한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먼저 그렸다. 그리고 그가 영향받은 인물과 사상,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어떻게 그의 사상적 독창성을 창조해 나갔는지를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함석헌이 현대 동서의 종교와 철학을 위해 어떤 사상적, 문헌적 공헌을 남겼는지를 진단했다.

이 책의 특징은 함석헌에 푹 빠진 그가 함석헌에 대한 신비화 내지 우상화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썼다는 점이다. 가령,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경찰에 체포돼 심문을 받을 때 경찰이 결정적 물증을 대지 못하면 침묵하거나 부인하는 모습은, 좋게 보면 실용주의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지만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두려움을 느끼는 약한 인간이라는 점을 새삼 상기시켜 준다고 해석했다. 또 서구에서는 '한국의 간디'로 알려져 있지만, 범국민적 인권운동을 조직하고 동원하는데 간디만큼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여성편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학문적 비판의 요소가 될 지언정, 김씨에게는 오히려 더 인간적인 함석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무튼 김씨는 '민족의 메시아' 함석헌이 아니라 '보통사람' 함석헌을 강조하려고 애썼다.

사실 평전 자체도 화제지만, 김씨의 이력이 보통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김성수씨는 신진고등학교 자동차학과를 나온 뒤 79년 한국철도대학에 들어갔다. 철야와 금식을 재미삼아 할 정도였던 그를, 같은 교회를 다니던 홍승권 씨(삼인출판사 부사장)는 '꼴통 보수 예수쟁이'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던 그의 인생 궤도가 바뀐 것은 교회에서 열린 김동길 박사 초청 강연회에 참석한 다음의 일이다. 김동길 박사의 강연을 듣고 커다란 충격 속에서 함석헌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그때부터 함석헌에 천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9년간 평범한 철도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퀘이커 모임에 참석하고 함석헌을 좇아다니며 강연을 들었다. 군대에 다니면서 한국방송대 영문학과에 들어간 것도, 언젠가는 함석헌 선생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막연하고 꿈 같은 욕심 때문이었다.

89년 2월 4일 새벽 함석헌의 소천 소식을 들은 그는 서울대병원 영안실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날로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는 퀘이커의 본산지 영국으로 유학을 갈 결심을 했다. 몇 년 전 막연하게 품었던 욕심을 구체적인 현실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10년 내로 함석헌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겠다". 평범한 '철도공무원'이 '함석헌 매니아'로 변신했다.

그는 함석헌을 공부하면서 '함석헌처럼 위대한 사상가이면서 실천가가 현대사에 드물다'는 확인을 갖게 됐다. 그러나 더 이상 함석헌 같은 인물이 나오지도 않을 것이고 나올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웅주의 시대는 끝났으며, 함석헌의 말대로 씨알들이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씨알들이 개인적인 삶의 완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동시에 사회개혁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영적인 사람이 가장 인권적이고, 가장 인권적인 사람이 가장 영적이다"고 강조했다.

함석헌을 바로 알리고 싶어하는 김성수씨의 노력은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4월 안에 함석헌의 미간행 원고들을 모아 단행본을 출간할 계획이다. 또 함석헌이 영어로 쓴 것이나 외국인과 인터뷰한 것들을 묶어 영문판 함석헌 모음집을 낼 생각이다. 자신의 논문을 영문판으로 내는 것도 포함된다. 일본 중국, 나가서는 통일 이후 북한에까지 함석헌 정신의 전도사가 되고자 준비하고 있는 그는 지금, 압구정동에 있는 한 유학원에서 유학준비생들의 서류를 대행해 주거나 번역을 해주고 있다. 철도대와 방송대 출신인 그가 학연(學緣)이라는 엄청나게 높다란 장벽에 걸린 것이다.